동성애(동성연애)의 의미, 동성애(동성연애)의 분류, 동성애(동성연애)의 원인, 동성애(동성연애)의 성도덕성, 동성애(동성연애)의 성적 선호, 동성애(동성연애)의 권리보호운동, 동성애(동성연애)의 영화 분석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동성애(동성연애)의 의미, 동성애(동성연애)의 분류, 동성애(동성연애)의 원인, 동성애(동성연애)의 성도덕성, 동성애(동성연애)의 성적 선호, 동성애(동성연애)의 권리보호운동, 동성애(동성연애)의 영화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동성애(동성연애)의 의미

Ⅲ. 동성애(동성연애)의 분류

Ⅳ. 동성애(동성연애)의 원인

Ⅴ. 동성애(동성연애)의 성도덕성

Ⅵ. 동성애(동성연애)의 성적 선호

Ⅶ. 동성애(동성연애)의 권리보호운동

Ⅷ. 동성애(동성연애)의 영화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성애를 미끼로 장서관의 금서를 빌려주는 보조 사서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그가 쥐를 보고는 놀라서 소리 지르는 장면에서 그걸 보고 웃어대던 주변 수도사들의 모습은 기묘한 동성애자를 비웃는 관객들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한편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동성애는 남성들만의 갇혀진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했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나 터키의 야만적인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속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는 끈끈한 우정을 바탕으로 한다는 측면에서는 앞의 두 영화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마약을 밀반출하려다가 적발되어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도 못하고 엄청나게 오랜 기간을 학대받으며 터키의 감옥에 감금되어 있어야 했던 미국 청년과 그를 아끼는 동료 사이의 샤워장에서의 애틋한 키스장면은 이전의 동성애 모습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동정 받아 마땅한 주인공은 동성애를 거절하고 관객들은 여기서 동성애를 그와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의지로 극복해야만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이 자신의 애인을 만나 그녀의 가슴을 보며 동물적으로 자위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으며 결국에 주인공이 돌아가야 할 곳은 그녀의 품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하게 되는데 내가 아마 6학년 때인가 학교에 일을 해주러 왔던 군인 아저씨들한테서 들었던 얘기다. 나는 형이 없었던 탓에 그 군인 아저씨들하고 무척 재미나게 놀았는데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아저씨들이 했던 얘기 중에는 성적 농담도 상당히 많았고 인제 와서야 그 의미가 이해되는 것들도 많다. 한 아저씨가 한 얘기 중에는 군대에 가면 처음에 내무반에서 고참들이 계지배 같이 예쁘장한 애들보고 옆에서 자라고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잘 때는 손잡고 자자고 한다든가 화장실 갈 때 같이 간다고 한다던가 혹은 고추를 만진다는 거였다. 그때는 그것이 그냥 우리들 사이에서도 있었던 좀 약한 애들에 대한 괴롭힘이나 남자애들끼리 하는 장난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군대내에서도 동성애가 존재해 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대나 혹은 그와 비슷한 장소에서 이성애의 대안으로 동성애를 택하는 거라면, 그래서 그 공간을 벗어나면 다시 이성애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동성애 담론에서 말하는 ‘동성애’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 언급한 세 영화에서 다룬 동성애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동성애를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이들 영화는 적어도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동성애의 유혹에 - 특히 남자들은 - 놓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Ⅸ. 결론
최근 급진적 서구 교회들의 경우 동성애를 하나의 성적 기호의 차이로 가볍게 생각하고 용인하는 분위기에 동참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 입장은 서구 여러 국가들에서 동성애자들이 인권을 앞세워 자신의 성적 성향을 사회적으로 공인받고자 하는 운동과 맞물려 적지 않은 논란을 빚고 있다.
우리는 먼저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동일한 부르심 아래 놓여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그 부르심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용서하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로 고투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올바른 것을 갈망한다. 그러나 종종 그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그 어떤 이유들로 인해, 그들은 그런 올바른 것을 그릇된 방법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동성애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없애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괴상한 농담과 모욕적인 말들을 그만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그들로 하여금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상처를 주게 된다. 교회는 동성애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을 얼싸안을 수 있는 곳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교회는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욕구를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그리고 여전히 기도 속에서 후원과 용납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를 대하는 올바른 방법은 사람을 남녀로 지어 서로 돕는 배필이 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비추어 정반대되는 죄임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른 규범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비록 고침의 가능성이 적을지라도 그들이 돌이킬 수 있도록 진정 돕는 길이다. 모든 동성애자들은 자신이 동성애의 기질을 가졌다는 점을 알게 될 때 많은 번민과 갈등을 겪는다. 이 때에 그들이 책임을 면하도록 그 성향을 정상으로 정당화하거나 다양한 성적 취향의 하나로 부추기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종의 무책임한 지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따라 좁은 길을 걸어가는 한, 그들은 기도할 수 있고 치유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동성애 욕구로 고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각별한 치유의 은혜를 주시기를 그리고 그들이 고투하면서 고통을 겪을 때, 그들 옆에서 위로하시는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겪는 고통과는 전혀 다른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취한 오만하고 적대적이며 편협한 태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든지 환영하며 받아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그런 공동체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태명, 성적 소수자에 대한 법의 태도 변화 : 동성애와 성전환을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성평등연구소, 2003
김신혜, 새로운 문화의 코드 \'동성애\', 대한에이즈예방협회, 2006
김희수,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 고찰 : 동성애는 죄인가?,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2007
전귀연 외 1명, 동성애 가족에 대한 연구 고찰, 한국가족학회, 1998
청소년보호위원회, 동성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에 관한 토론회, 2003
홍순원, 동성애에 대한 문화윤리적 연구, 한국기독교학회, 2009

추천자료

  • 가격6,5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3.07.30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6722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