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우리는 ①향후 미국과의 전략적 이익의 동질성과 차이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정립하고, ②주변국과의 다자적 협력관계 모색 과정에서의 한미동맹 자산의 활용 문제에 관해 준비하며, ③북미관계 개선에 따른 새로운 미래의 한미동맹체제 운용을 위한 준비를 보다 더 철저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Ⅶ. 한반도군비통제협상(남북군비통제협상)의 접근방법
1. 점진적단계적 접근
군비통제에 대해 남북한 양측이 갖고 있는 인식과 입장의 차이 그리고 국가안보에 직결된 군사문제가 갖는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남북한의 군사협상에서 점진적단계적 접근방법은 양보할 수 없는 기본원칙이다. 즉 협상 당시의 여건에 합당한 합의를 하고 이를 이행하면서 습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점진적 접근법은 군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모험을 순차적으로 극복하도록 함으로써, 협정이행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불신과 긴장을 최소화시킬 것이다. 시나이반도에서 키신저의 점진적 협상철학이 문제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역사적 선례가 있다. 시나이정전협정 체결 당시 이집트 육군원수였던 엘가마시(El-Gamasy) 장군은 군사적 차원의 대화가 매 단계마다 중단되었지만 키신저의 점진적 외교를 통해 해결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따라서 초기에는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미약한 합의라도 이를 이행하면서 신뢰를 구축하고 장래의 발판을 마련하는 “학습과정”(learning process)을 밟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협상의 초기단계에는 합의사항이 갖는 내용의 중요성보다는 상징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합의이행을 중시하는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2. 우회적 접근
불신과 적대감이 고조되고 상호협력의 경험이 일천한 남북한의 경우, 군사적 의미가 별로 없는 사소한 방안일지라도 실제로 이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 군사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덜 민감한 비군사분야에서의 유사한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우회적 접근법을 택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즉 양측이 공동의 이익을 갖는 비군사적 문제를 상호 협력 하에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이를 통해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군사분야에서 유사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Ⅷ. 한반도군비통제협상(남북군비통제협상)의 지향점
이러한 현 상태와 미래의 소요를 동시에 감안할 때, 현 시점에서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남북한 군비통제의 방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긴박성을 지닌 접근이 필요하다. 그 동안 우리의 북한 핵 관련 해법이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강화되어 온 것은 분명하나, 북한의 태도 변화나 양보를 유도할 만한 구체적 수단이나 방안의 개발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한간의 군사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을 위해 강온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망라한 구체적 수단의 식별 및 개발이 한층 강조될 필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된 한미 및 주변국과의 공조 강화가 요구된다.
둘째, 한국의 입장에서는 현재 동북아 및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질 위주의 군사력 건설 추세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남북한간의 군비통제 대안은 등가등량 감축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과 균형적 감축을 제시하는 한국의 입장이 맞서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질 위주의 군사력이 국가간 전력 균형에 있어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미래의 추세를 감안할 때, 한국으로서는 미래 전력 구축을 위한 군사력 건설을 남북한 군비통제와 연계하는 대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의 등가등량 감축 제안을 일부 수용하면서 그 대상 장비나 부대에 한국 자체의 군사력 건설계획에 의한 조정대상을 포함시킬 경우(즉 도태되거나 노후장비 위주의 감축을 시도할 경우) 군비통제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력의 질적 우위는 한층 강화될 것이고, 이는 결국 남북한간의 안정적 군사력 균형을 보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와 연관하여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군비통제를 군사력 건설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간주하는 시각으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다. 즉 미래 군비통제는 첨단 정예군사력 건설의 대척점에 선 존재가 아니라 이를 촉진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각종 국방계획 차원에서 군사력 건설 계획과 남북한 군비통제 계획을 연계하는 조치의 발전들이 요구된다.
넷째,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 조정의 과정을 남북군비통제에 활용하고 이를 협상카드화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미간의 각종 협의결과를 종합할 때, 주한미군의 위치와 규모는 현재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전력조정을 남북군비통제 협상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시한이 현재로부터 3∼4년에 불과함을 암시한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 해결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는 시기부터 북한 측에 대해 주한미군의 조정계획과 연계한 남북한 군비통제 방안을 집중 제안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군비통제는 역내 여타 국가들의 군비통제와도 연계되어야 한다. 향후 핵을 비롯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이 대폭 축소되거나 소멸될 경우, 남북한 혹은 통일한국과 주변국간의 전략적 타격능력의 편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반도내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해소되는 일정 국면부터는 남북한의 전략적 타격능력 제한조치와 함께 주변국들이 한반도 인접지역에 배치전개한 전략무기들에 대한 통제 조치 역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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