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함이다. 즉 “산 것을 죽여서 죽지 않게 가공하여 密封하는 것”이다. 통조림은 ‘밀봉’을 함으로서 외부와 차단된 공간을 만들어 그 속의 물건을 상하지 않게 보호 하는 원리이다. 바로 여기에서 통조림의 이중적 의미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통조림의 기본원리인 ‘밀봉’시스템은 통조림을 개봉하기 전까지는 그 속의 상태에 대해 전혀 알 수 가 없다. 즉, 개봉 전 통조림 속의 물건은 현실세계와 단절된 공간으로서 전혀 다른 공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無意味를 형성한다.
개봉 후의 통조림은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진다. 현실과는 다른 공간속에서 단절되어 있던 물건들이 ‘開放’이라는 행위를 통해, 현실공간으로 나타나며, 疏通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로써, 무의미했던 그 속의 물건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편, 통조림 속의 물건은 밀폐된 공간속에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개봉을 함으로써, 점차 생명력을 잃어 가게 된다.
이러한 통조림의 의미를 확장하여 공장장의 실종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공장장의 실종은 현실 공간에서 사라져 버린 ‘無’를 의미 한다. 소설 속에서는 공장장의 실종과 관련된 사실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공장장을 현실에서 ‘사라져 버리게’ 만든다. 그러나, 실종 4개월 후, 개봉된 통조림 속에서 발견된 ‘人血’로 인해 독자는 비로소, 공장장의 자살을 의심하게 된다. 만약 인혈이 발견된 그 통조림이 개봉되지 않았다면, 인혈은 현실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며, 공장장은 현실 공간에서 증발하여 ‘無’가 된다. 그러나 그 통조림의 ‘개봉’을 통해 독자는 비로소 공장장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되고, 공장장은 ‘自殺’이라는 형태로 ‘有’로서 다시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③ 통조림을 따는 행위
통조림 속의 물건들은 깡통을 따는 즉시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이 된다. 즉, 통조림 깡통을 따지 않았다면,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추측들만 난무할 뿐, 그 속의 실체는 알 수가 없다. 이 소설 속에서 나오는 통조림 깡통은 꽁치나 고등어, 복숭아와 같은 음식들을 담고 보관하는 용기로서 뿐만이 아니라, ‘여자 친구에게 줄 반지를 담는 공간’, ‘아이에게 선물로 줄 싸구려 장난감 포장으로서의 공간’, ‘ 생애 처음 장만한 집문서를 보관하는 공간’,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어머니께 드릴 고양이를 밀봉하는 공간’ 의 모습으로도 형상화 되고 있다. 이러한 물건들은 그것을 넣고 밀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지만, 그것을 밀봉하는 순간 물건들의 실체는 사라져 버린다. 통조림 깡통을 따지 않는 한, 그 속의 소중한 물건들은 그것을 밀봉한 사람의 꿈과 소망, 그리고 마음을 결코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장장이 사라진 후 유통되었던 깡통들을 따지 않았다면, 결코 “덩어리져 있는 붉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통조림 속에서 나온 “인혈”은 결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깡통을 따는 행위를 통해 공장장이 사라진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즉, 이 ‘통조림’을 따는 행위야 말로 소통이 단절된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구조화된 세계 속에서 일탈할 수 있으며, 공장장의 ‘실종’에 관심을 갖고, 통조림 공장이라는 세계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박민규 외, 『2010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2010.
S.리본 케넌, 최상규 역, 『소설의 현대 시학』 예림기획, 1999.
<학술논문>
백윤경, 「형식주의 기법의 실체」, 문예시학 25집, 2011.
김주연, 「고양이과 쥐, 개 그리고…… 사람」, 문학과 지성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