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교육인적자원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고 이와 밀접하게 EBS 수능 정책을 실시했다. 위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정부의 공교육 강화 정책은 사교육비 절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 기회가 경제적 여건에 따라 결정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이 사교육을 통해 그 토대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의 이와 같은 노력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을 통해 드러난 것은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큰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 이후 1년 뒤의 여론 조사를 보면, 50.8%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별 효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엠비존씨엔씨 시행. 전국 청소년-성인남녀 516명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이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공교육의 강화 없이는 사교육의 경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보다 구체적인 공교육 강화 방안이 요구되었다. 한 방송의 대담에서, (방송자료) , 2005.2.19.
이동석 대구 영신고 교감은 교육 서비스도 수혜자가 아닌 제공자가, 정부의 공교육 이념에 통제를 받는 하에 경쟁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즉, 시장의 성격을 갖지 않는 공교육에 일정 정도 경쟁의 논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김학윤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운영위원은 주입식 교육을 피하고 교사들의 재량권 확대에 따른 다양화 교육으로 사교육의 존립 근거 자체를 제거할 것을 피력했다. 정기오 씨는 학생들에게 완전한 다양화 교육이 어려운 만큼 수준별 교육의 틀 안에서 부작용을 시정해 나간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사교육비 경감은 공교육의 강화에 있고, 공교육 강화의 방식은 일관된 중앙집권적 정책의 실시가 아닌 다양화 교육의 강화로 획일적 입시 사교육의 존립 근거를 제거하는 것에 있다고 보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다원주의 사회의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바람직한 교육적 대안으로, 사교육의 본질적 기능인 개별적 학습욕구 충족만을 기대하는 방안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양화 교육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용인하는 사회적 인식을 조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다양화, 개별화, 특성화 교육이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구별이 명확했고, 특정 능력의 서열화로 학업의 성패가 쉽게 가려지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벌 위주의 풍토와 특정 학업 성적의 서열화로 인간을 평가하는 잣대를 제거하는 의식의 개혁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는 교육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들만의 고민이 아닌, 보다 포괄적인 사회 과학적 고민과 국민들의 관심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5. 결론
EBS 수능 정책은 2004년 2월 17일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의 일환으로서, 교육 관계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하나의 교육적 이슈이다. 그동안 정부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따라서 나날이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는 사교육을 대처하기에 역부족인 공교육 대책을 제시해 왔기 때문에 국민들은 EBS 수능 정책을 공교육 강화의 의지를 강력히 관철시킬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EBS 수능 정책은 그 정책의 강력함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게 되었고, 이는 실질적인 사교육 경감에 대한 의심은 물론 공교육의 내실화를 저해했다는 우려까지도 불러일으킨 것이 되었다. 결국 EBS 수능 정책은 그것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컸으며 국민들과 교육 관련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하였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前文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와 3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고 적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이래 한결같았던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 즉 균등교육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국가가 제정하는 기초교육을 무사히 받도록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하며, 더 나아가 적극적인 교육 복지의 개념, 즉 각인이 자기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공교육의 균등 교육은 곧 다양한 개성과 인격을 위한 개별화와 다양성 교육에 미치는 것이어야 하고, 여기에 공교육의 기본적 목표가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간의 공교육의 이념이 이와 같은 진정한 균등 교육의 목표에서 완전히 빗나갔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동안의 공교육 정책은 EBS 수능 방송 정책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공교육의 내실화와 성숙보다는 평등의 이념을 해친다고 여겨지는 사교육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전국 방송과 같은 비정상적인 중앙 집권적 교육을 택하기도 했으며, 더군다나 입시 위주와 서열화라는 현재의 기형(奇形)적 교육 현장을 용인한 미봉책으로 기능한 측면이 있었다.
평등이라는 지상(至上)의 목표가 반드시 현실에 이념 그대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지만, 공교육 정책은 앞으로 이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자기 발전을 꾀해야 할 것이다. 그 정책 시행의 과정에서는 항시 교육적 가치를 망각하지 않는 것-예를 들어 EBS 수능 정책의 실시를 검토할 적에, 수능 교육을 공교육이 나서서 강력히 추진할 때에 근본적인 교육의 장인 학교와 교실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신중히 살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교육부가 정부가 제시해야 할 목표와 내실화 방안 또한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성격을 띠지 않아야 할 것이며 가능한 한 일관성을 갖고 안정적으로 시행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 전체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지식의 서열화 경향이 공교육의 가치 실현에 앞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조급하게 만드는 큰 요인인 것을 직시하고, 개성의 발현과 인간성의 함양이라는 국민 교육을 제대로 실시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선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교육의 자기 발전과 사회적 의식의 성숙이 바람직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열린사회의 시민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