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적 욕망이론과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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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주제 : 들뢰즈의 유물론적인인 욕망이론과
그것을 통해본 현대 자본주의

서론 : 분열증 위에 서 있는 자본주의

본론 :
1. 들뢰즈와 가타리 소개
2. 욕망의 시대
3. 유물론적 욕망개념
4. 통제의 코드
5. 파시즘의 자본주의

결론 : 들뢰즈의 욕망이론이 현대자본주의사회에 갖는 의의와 극복해야할 한계

본문내용

석은 몰적 구성체의 분석에는 적절할지 모르나, 보다 중요한 분자적 수준의 운동은 해명할 수 없다고 본다.
들뢰즈는 전체주의적 통치와 파시즘은 욕망의 동원이라는 관점에서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스탈린식 전체주의적 통치는 경직된 신분성, 중앙집권화 및 획일적 총체화의 표본이고 전형적인 거시정치적 현상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농촌파시즘, 우파파시즘, 학급파시즘, 직장파시즘 등 미시적이고 분자적인 단위파시즘들이, 몰적 집계로 ‘공명’되기도 전에 이미 각기 고유한 특성과 자율성을 견지하면서 끊임없이 상호교류하는 분자적이고 미시정치적인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주의적 국가는 가능한 모든 탈주의 선들을 철저히 봉쇄하는 데 비해, 파시즘은 이를 차단하기보다 강렬한 탈주의 선을 형성하고 가차 없는 파괴와 죽음의 선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이와 같이 대중적 욕망의 흐름을 단절시키기도 하고 동원하기도 하는 파시즘의 힘을 전체주의적 통치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파시즘이 위협적인 것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분자적이고 미시정치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대중의 욕망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도 자본주의의 파시스트적 속성 때문이다. 소비사회 혹은 미디어 사회로 변화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욕망의 무의식적 리비도의 흐름을 차단하기보다는, 탈코드화와 탈영토화를 통해 욕망의 흐름을 한껏 해방시키면서도 탈영토화된 욕망의 흐름을 포획하여 자본주의의 현실원칙에 예속시킨다는 점에서 파시즘적 속성이 뚜렷하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대중의 욕망을 미시적으로 분자화하면서도 이를 몰적 집계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결 론
대안 그리고 한계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개념에서 명백히 밝혀진 것처럼 욕망의 흐름은 유목적이고 기계적이며 무의식적이고 분열적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생산적인 에너지의 흐름이다. 욕망은 오이디푸스화 됨에 따라 억압되고 왜곡되며 분열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소비자본주의 사회는 그 어느때보다 이러한 욕망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매커니즘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면서도 탄력적이다. 소비대중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본의 욕망을 스스로 욕망하도록 자의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 욕망을 한껏 탈영토화 시키면서 탈영토화 된 욕망의 분열적 흐름을 가차없이 포획하여 파괴의 흐름으로 전환시키는 파시즘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은밀하고도 철저한 통제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일상적 사고와 행동속에 움트고 있는 왜곡된 욕망의 역동을 감시할 뿐 아니라, 탈영토화된 욕망의 분열적 흐름을 자본주의의 현실원칙에 재영토화 시키고 순치시키는 다양한 사회제도 영역의 오이디푸스화 기능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점검이 필요하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정신분석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분열증분석을 선호한 이유는 이러한 판단에서 오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추구하는 변혁의 방안은 사회주의적 의식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적인 탈영토화 과정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가속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병폐를 내파시키려는 전략이다.
유목적이고 기계적이며 분열적인 욕망의 속성에 충실한 변혁이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보면 욕망의 흐름은 지금보다 더욱 탈영토화되고 탈코드화되어야 하며, 탈영토화되고 탈코드화된 욕망의 분열적 흐름을 자본주의의 현실원칙에 재코드화시키려는 편집증적 경향을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위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변혁의 주체 혹은 탈주의 주체를 설득력있게 개념화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남아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상정하는 탈주의 주체는 분열적이고 모든 유형의 경직된 질서에 저항하면서 자유롭게 횡단하는 주체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에는 탈주의 선들을 접속시킬 수 있는 의식적 주체도 의지의 주체도 없다. 욕망의 본질을 의식적 주체와 무관한 기계적 흐름이라고 보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상정이 옳다면 변혁을 주도해나갈 주체를 설정하기란 어려운 일인 것이다.
둘째,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의 다원성과 복수성을 강조하면서도 다원적 욕망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자아실현을 준거로 기본적 욕망과 고차적 욕망을 범주적으로 구분했고, 니체도 의지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삶을 약화시키는 힘과 삶을 고양시키는 힘을 구별했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는 왜 혁명적 욕망이 반동적 욕망, 왜곡된 욕망보다 바람직한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욕망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왜곡되고 분열된 욕망이 있다. 이러한 욕망들 속에서 서로의 근본적인 욕망의 자유로운 분출을 내세우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탈현대적인 관점에서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는 강조했지만 다양한 욕망들의 가치위계는 주장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리적 측면을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급진적 이론과 정치적 실천에 유익한 전망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파시즘과도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통제를 가능케 하는 근본적 요인이 우리 자신의 왜곡된 욕망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내면적 성찰을 촉구하였다. 이것이 들뢰즈가 반역의 철학자로까지 분류되고 언제나 철학적 사조나 학파의 바깥을 맴돌면서도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서 새로운 정의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흐름을 거세게 흔들어놓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의 철학이 적어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현대 철학사에 남긴 업적과 엄청난 영향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문헌
강대석, 『서양근세 철학』 서광사 1985
권영숙 조형근, 『들뢰즈와 푸코』 새길 1995
신현준, 『들뢰즈와 가타리 : 존재의 균열과 생성을 탈주』 새길 1995
이용주, 『편집증적 지식과 분열증적 지식 : 질들뢰즈와 펠릭스가타리의 지식이론』 푸른숲 1997
전경갑, 『욕망의 통제와 탈주』 한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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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23
  • 저작시기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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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2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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