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릉 자체에 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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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단군릉 자체에 대한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서론
■ 본론
1. 단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2. 단군릉 발굴 개요
3. 단군릉 발굴과 변화된 북한의 역사인식
4. 단군릉은 과연 단군의 무덤인가 -「단군릉」에 대한 의문점
5.「단군릉」과 남북한 역사인식의 비교
■ 나의 결론-단군릉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본문내용

나는 기본적으로 강단 사학자들의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강단 사학자들이「단군릉」은 실제 단군의 무덤이 아니라, 고구려시대 귀족의 무덤으로 결론 내리는 데에는 반대한다. 그래서 나는 단군릉의 발굴 결과를 나름대로 다음 두 가지의 다른 방향으로 정리 해 보았다.
첫째는 단군릉의 유골에서 얻은 연대와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각각 다른 시기의 것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릉의 연대는 유골을 측정한 연대이다. 그러므로 단군릉에 묻힌 인물은 지금부터 5,011년 전의 사람이라고 보고 그곳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장식품과 철제 못을 비롯한 유물들은 고구려 시대 개축시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이미 금동과 철이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보면 우리 민족의 청동기문화 개시 연대를 지금까지 확인된 연대로 보더라도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단군릉의 연대 측정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군릉에 묻힌 사람이 5,011년 전의 사람이라면 고구려 시대에 개축을 하면서 금동관이나 관을 새로 만들어 넣었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무덤은 고구려 시대의 무덤인데 단군릉으로 잘못 전해 왔으며 연대 측정에도 착오가 일어났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단군릉에 관한 위의 두 해석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가 옳은 것으로 성급하게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단군릉의 발굴 내용에는 위와 같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도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이 발굴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군은 우리 민족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단군릉 발굴 내용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남북한 학자가 다 같이 협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학계의 단군릉에 대한 주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으며, 정치적 논리가 짙게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남한 사회의 단군 인식에도 똑같이 많은 문제가 있다. 단군을 국수주의나 배타주의에 이용하거나 심지어 신앙대상으로 받드는 것 등이 그러하다. 한 예를 들자면 몇 년 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어느 단체에서는 학교와 공원에 단군상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를 우상 숭배로 규정한 어느 종교단체에서는 단군상을 파괴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었다. 그리고 그 이후 단군상을 더 이상 세우지 않는다면 그것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두 단체의 갈등은 일단 중지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언제든 다시 발생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싸움이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사회에는 여전히 단군을 신화 속의 인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주된 시각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단군은 오히려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단군 및 단군릉의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로서의 단군 문제와 인식으로서의 단군 문제를 분리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역사적 사실로서 단군 문제의 경우는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아직은 단군이 신화 속의 인물이며 초기 국가가 형성되던 시기의 상징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나 민족이 어려운 시기에 민족적 동질성 회복에 기여한 단군 신앙 및 민족 시조에 대한 관념은 계속 소중한 우리의 정신 자산이며 소중한 경험으로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단군'은 그 실재 여부를 떠나 여전히 주목되어야 할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단군릉의 발굴은 분단과 지역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그 모순구도를 깨는 귀중한 자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지상 과제인 통일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며, 이러한 통일을 이루는 데는 남북한간에 기본적으로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일체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남북 간의 경제 교류나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정부의 노력, 이산가족 상봉 및 스포츠 교류나 예술단의 교환 방문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이 동시에 입장하였고, 같은 해 10월 3일 개천절 행사를 동시에 개최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병행하여 그 노력의 결실을 얻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단군의 후예라는 공통의 혈연의식을 갖는 것이라 하겠다. 민족 시조에 대한 공통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일체감 조성이 통일을 위해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단군 및 단군릉의 사실성 여부를 떠나 북한학계의 역사인식을 긍정적 의미로 해석할 이유가 된다. 그리고 여전히 남한 사회에도 단군 및 고조선사에 대한 건전한 인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민족의 공존과 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민족의 시조 단군이 긍정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단군릉의 발굴과 단군의 유골 발견은 우리 고고학의 승리이며 나아가서 조선민족의 큰 승리로 된다. 단군이 실제한 인물로 밝혀지고 단군조선 이래 조선민족이 단일한 민족으로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꿋꿋이 살아온 사실이 확증됨으로써 단군의 후예로서 우리 민족의 자부심은 더욱더 높아지고 한핏줄을 이은 7천만 동포들이 조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하는 길에서 더욱 굳게 뭉쳐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은 정견과 신앙, 재산유무의 차이를 초월하여 단군을 조상으로 하는 같은 민족이라는 물보다 진한 피의 동질성을 우선시 하면서 외세에 의해 이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만이 겪고 있는 분단의 비극을 조선민족의 넋, 민족의 폭넓은 도량으로 끝장 낸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전영률의 보고문)
<참고문헌>
사회과학출판사, 1994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론문집 - 북한의 단군 및 고조선 제1차 학술토론회 논문집』
이형구 엮음, 1999『단군과 고조선』살림터
노태돈, 2000 「북한 학계의 고조선사 연구동향」『단군과 고조선사』사계절
안병우도진순 편, 1990『북한의 한국사인식』(Ⅰ)(Ⅱ) 한길사
박광용, 2000「북한학계의 단군 인식과 "단군릉" 발굴」『역사비평』2000년 가을호

키워드

단군,   단군릉,   자체,   분석,   발굴,   북한,   역사,   인식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04.14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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