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세력의 대공세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닉슨이 기대한 대로 베트남 문제가 여론에서 멀어져 미국의 선택폭이 넓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사회에서는 “베트남을 떠나라”는 요구가 증가했다. 미국이 더욱 중요한 세계 정책을 수행하는 데 베트남 개입이 장애가 되었다는 생각이 확대되자 미국 의회는 정부가 요구한 베트남 원조를 삭감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한 것은 베트남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때문이었다기보다는 그것이 세계 전략의 일환이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를 지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베트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공산주의 봉쇄’라는 냉전시대의 세계 전략일환으로 베트남에 개입했다. 미국은 중국의 위협과 민족해방 투쟁의 도전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남베트남을 잃게 되면 미국의 국제적 신뢰가 무너질 위험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결국 ‘공산주의자의 위협’에서 베트남을 지키지 못하면 미국의 세계 전략이 큰 타격을 받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실제 세계 전략 차원에서 ‘공산주의를 봉쇄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만으로는 미국이 그렇게 큰 규모의 개입을 왜 그토록 오랫동안 계속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이 점에서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추구한 패권의 실체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쳐 명실 공히 최강대국이 된 미국은 세계대전을 부른 블록경제가 아니라 자신이 주도하여 세계 전체를 통합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를 만들고자 했다. 둘째,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자 미국의 핵 독점이 무너졌다. 이는 군사적인 면에서만 보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미국 자신의 영토에 대한 소련의 핵공격을 각오하고서라도 동맹국을 방위할 의지가 미국에게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에 이르렀을 때, 만약 그럴 의지가 없다고 한다면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동맹국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셋째, 중화 인민공화국의 성립이다. 이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나마 일본 최대의 시장이었던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에서 이탈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계경제, 특히 일본 경제 재건을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였다. 더욱이 이는 동남아시아 등 아직 확실히 질서가 잡히지 않은 지역이 중국의 영향 아래에 편입될 가능성도 있고, 일본이 시장 확보를 위해 스스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정치적 타협을 시도해 미국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이른바 ‘미국의 패권’ 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심각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1950년의 위기에 미국은 냉전을 군사적으로 강화하고 유럽과 일본의 경제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제 3세계의 정치, 군사적 ‘안정’에 관심을 두는 쪽으로 대응했다. 이 지역은 중국의 영향이 바로 미칠 수 있는 곳인 데다가 정치, 군사적으로 확보만 할 수 있다면, 유럽과 일본 특히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던 일본의 경제 재건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국은 자신의 이익 확보보다는 패권국이 짊어져야 할 정치, 군사적 의무 때문에 베트남에 개입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6. 베트남전쟁이 갖는 의미 연구
베트남 전쟁은 본래 내전의 성격을 띠었으나, 후에는 그 어떤 전쟁보다 냉전 체제의 양상을 잘 보여준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6.25 전쟁과 더불어 냉전 체제의 주축이었던 중국, 미국, 소련이 모두 얽혀있던 전쟁으로 베트남 전쟁의 전개 양상은 자연스레 냉전체제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냉전 체제가 성립된 이후 냉전 체제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일어난 전쟁이다. 이에 베트남 전쟁에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미국·소련·중국·한국 등 다양한 국가들이 연관되어 있다. 같은 사회주의 진영이었던 소련과 중국은 당시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논쟁과 중소 국경 분쟁으로 인해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에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갈등의 주축이던 미국과 소련은 중국의 베트남 이권 차지로 중국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적과 자신들의 이권 차지를 위한 것이긴 했으나 동시에 베트남 전쟁의 빠른 종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무력 개입을 피할 것임을 밝힌 닉슨은 1972년 중국을 방문하여 미중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냉전체제 완화의 조짐을 보였다. 닉슨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 역시 회복되기 시작하고 1979년에는 국교를 수립하기도 했다. 즉 베트남 전쟁은 냉전 체제의 갈등 심화가 최고조로 달하였을 때 발발하였으며, 전쟁의 종전과 함께 냉전 체제의 완화에 영향을 끼친 전쟁이었다.
또한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되고 나서 냉전 체제가 구축이 되면서, 또다시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한 위기들이 많았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서 사람들은 다시금 전쟁의 폐해를 자각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됐다, 전쟁 없는 평화가 자국의 이익보다 더 소중하다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대아시아의 무력 개입은 피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전쟁 없는 평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 것이다. 더욱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베트남의 밀림을 없애기 위해 사용된 고엽제가 민간인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게 되자, 전 세계는 전쟁의 잔혹함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전쟁을 경계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베트남 전쟁의 종전 이후 수많은 핵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냉전 체제는 완화될 수 있었으며, 종국에는 해제될 수 있었다.
7. 느낀점
많은 사람들은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때론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결정의 이유를 든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베트남전쟁의 실패가 한국과 미국에 영향을 준 것처럼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고 같은 실수를 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