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도 없이 위성과 케이블, 인터넷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하여 전세계에 유포되고 있다. CNN의 걸프전 보도를 보면 전쟁의 참혹함을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한 그림(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사일과 포탄이 날아가면서 보여주는 섬광)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그 같은 그림 속에서 왜 전쟁을 해야하고, 그 포탄과 미사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하는 가에 관한 진지한 물음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다만 “야, 정말 멋있는 장면이야”라는 상징성만이 머리 속에 남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차별 폭격으로 이라크의 민간인 수십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전쟁광인 후세인을 응징하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에 도전하고 있는 이라크를 응징해야 한다는 미국의 생각, 미국의 시각을 충실히 반영했을 뿐이다. 이러한 미국적인 세계관의 유포는 세계무역센터의 테러와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글로벌 미디어 중심의 일방적 정보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항 네트워크 또는 공공액세스 채널의 확보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통과된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에는 시청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의 방송을 의무화하고 이에 따른 액세스 프로그램의 편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KBS \'열린 채널\'과 시민 방송의 정착이 지지부진한 것은 대항 네트워크 형성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Ⅷ. 결론
2000년 벽두에 들려온 미디어업계의 공룡 타임워너(Time Warner)그룹과 세계최대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AOL(America Online)의 합병 소식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미디어 산업의 지각 변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시켜준 일대 사건이었다. 이 세기적 사건에 대하여 국내의 어느 유망한 벤쳐 기업가는 “온오프라인 업체간 통합은 예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다음 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고 말하면서도 “효율을 중시하는 만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최고라는 기득권에 연연해하지 않고 과감히 하나로 합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경영자세에서 무서움마저 느낀다”고 그 심경을 토로하였다(인터파크　최상국 이사).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그 규모가 1600억 달러에 이르는 합병 사상 최대라는 점이나 의사결정의 갑작스러움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인쇄와 영상 등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과 신생 인터넷 기업간의 합병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통적 미디어 그룹의 제왕이었던 타임워너사가 인터넷 접속서비스 회사인 아메리카온라인(AOL)을 인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다. 창사한지 채 15년도 안 되는 AOL이 70년 이상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타임워너를 사실상 흡수 합병한 것이다. 참으로 전통과 연륜의 무게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정보혁명의 파괴력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 특히 방송매체는 견고한 독과점 구조라는 철옹성 속에서 무풍지대로 온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매우 희귀한 공공의 자원을 이용하여 운영되는 서비스로 방송이 인식되는 한, 방송경영에 생존(survival)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여지는 없었다. 물론 그간 케이블TV의 도입과 지역민방의 허가로 다매체다채널 시대의 개막이라는 외풍이 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독점적 지위를 안정되게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전체 방송서비스 가입가구수 대비 케이블TV의 가입가구수는 약 15%에 불과하고, 지역민방은 자진하여 서울방송(SBS)의 사실상 지역 가맹국이 됨으로써 또 하나의 전국 네트워크 방송국을 허용한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방송계에 밀려오는 물결 즉, 인터넷방송(webcasting)과 위성방송 그리고 디지털 방송의 출현은 방송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전개되는 방송환경의 변화는 방송의 개념과 존재 방식은 물론 방송 서비스의 영역, 방송과 수용자의 관계, 방송 산업의 구조 등등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의 단말기가 화상 전화기로, TV로, 혹은 정보검색기로 사용될 수 있다. 양방향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프로그램의 형태와 제작 환경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로 광고수익에 의존했던 방송의 수익구조도 크게 바뀔 것이다. 기존의 방송이 모두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게 되면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급류를 타고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기업들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경쟁의 무풍지대인 방송계에도 본격적인 경영의 문제, 즉 사활을 걸고 생존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기업의 경영 환경은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디지털 정보처리 기술의 개발과 이에 따른 미디어 융합의 시대에 더 이상 특정 서비스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고, 역동적인 미디어 경제 지형의 변화라는 대세의 바깥에서 고립하여 기득권을 유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새로운 변화의 도전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공간이 발생하면 여지없이 그 틈새(niche)를 비집고 들어오는 대안적 서비스들이 출현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놓은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업의 성과마저 넘보기 때문이다. 변화의 흐름은 모든 견고한 것을 녹이면서 인과의 꼬리를 물고 지속되는 것이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기업은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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